`사랑과 우정사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비롯해
`유리의 성`,`그녀의 연인에게` 부른 주인공
애절한 목소리에 3옥타브 넘는 미성
`김성면표 이별노래`로 가요계 점령
그중 이제부터 소개할 김성면이란 가수는 1990년대 록발라드를 논할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미성을 기반으로 절절한 고음을 주무기로 여심은 물론 남심까지 공략한 그는 당대 최고의 ‘노래방 스타’ 중 하나였다.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선곡하는 사람이 워낙 많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래를 완곡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타고난 ‘고음 유전자’에 연습으로 다져진 실력, 여러 무대를 거친 ‘내공’까지 겸비한 그는 그 시대 가장 잘 부르는 가수 중 하나였다. 그 시대 비슷비슷한 가수 중에서 김성면을 목소리를 골라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성면표 록발라드 문법이 도드라졌기 대문이다. 김성면은 작사, 작곡까지 겸비한 만능 가수였는데 그는 본인의 목소리를 가장 극적으로 들리게 하는 방식을 아는 음악인이었다. 잔잔한 미성으로 시작한 곡이 점점 절정을 향해갈 때 느끼게 되는 묘한 긴장감, 애절한 미성에 실린 간절함의 극대화, 클라이맥스에서 만개하는 처절함 등이 김성면표 발라드의 주요 재료였다(이 점 때문에 김성면표 발라드는 다 비슷하다는 일각의 불만이 나온 것도 사실이었으나).
당시 김성면의 록발라드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최근 수년간 주요 무대에서 그의 노래가 얼마나 많이 불렸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노래는 1990년대~2000년대 반짝하고 스러지기엔 아까운 존재였다. 그 당시 그와 경쟁했던 가수들을 통해,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수많은 후배들을 통해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도 그의 노래가 널리 불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연우신’이라 불리며 절정의 가창력으로 유명한 가수 김연우가 무대와 예능을 넘나드는 인기스타가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토이’의 객원보컬로 ‘내가 잠시 너의 곁에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른 김연우가 노래를 잘한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솔로가수로의 성공적인 커리어가 반드시 가창력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는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가수로서의 초석을 다지고 ‘복면가왕’ 프로그램 초기 장기 집권을 기반으로 ‘연우신’ 반열에 올랐다. 그가 ‘나는 가수다’ 합류 초기 너무나 완벽한 발성으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부른 탓에 ‘로봇 같다’는 평을 들으며 초반 탈락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나가수 1부터 3까지 모든 프로그램에 다 나왔는데, 나가수 1 탈락 이후 김경호와 함께 부른 ‘사랑과 우정사이’가 2위에 오르며 롱런의 기반을 구축한 바 있다. 김경호와 함께 ‘듀엣의 정석’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으며 ‘가수 김연우’를 재발견하게 만든 시금석 무대를 연출했다. 이 노래가 바로 김성면이 속한 그룹 ‘피노키오’가 불러 히트한 곡이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너의 모습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
어디서부턴지 무엇 때문인지
작은 너의 손을 잡기도 난 두려워
어차피 헤어짐을 아는 나에겐
우리의 만남이 짧아도 미련은 없네
누구도 널 대신할 순 없지만
아닌건 아닌 걸 미련일 뿐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우연보다도 짧았던 우리의 인연
그 안에서 나는 널 떠나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당시 20대 초반 김성면이 부른 이 곡은 20세기 ‘썸남 썸녀’의 마음을 적어도 20년 전 상세하게 묘사하며 시대를 앞서간 곡이다. 아울러 김성면표 발라드의 시작을 알린 명곡이라 할 수 있다. 후렴부 ‘그 안에서’ 할 때 ‘그’에서 ‘2옥타브 시’의 음이 걸리는데, ‘그’라는 모음이 고음을 내기에 쉽지 않은데다 최고음에 도달하기 이전 쉼없이 ‘2옥타브 미~파’를 오가며 성대가 쉽게 피로해지는 탓에 웬만한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완곡하기 쉬운 곡은 아니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본격적인 히트곡에 비하면 그래도 이 노래는 무난한 난이도 안에는 드는 곡이었다. 1994년 김성면은 기타리스트 이태섭과 함께 2인조 밴드 K2를 결성하며 옷을 갈아입는다. ‘잃어버린 너’ ‘슬프도록 아름다운’이 수록됐던 K2 첫 번째 앨범은 김성면의 전성기를 알린 곡이다. 밴드 피노키오가 원히트원더로 사라진 것과 달리 K2는 앨범을 거듭하며 꾸준한 히트랠리를 펼쳤다. ‘슬프도록 아름다운’은 김성면표 발라드 정점에 있는 곡 중 하나다. 김성면이 직접 작사, 작곡을 맡았다. 이 곡의 클라이막스는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우리 지난날의 사랑아’ 부분인데, ‘프’에서 2옥타브 라가 걸리는 것을 시작으로 ‘웠’에서 ‘2옥타브 시’, ‘우리’에서 ‘2옥타브 시’를 한번더 찍은 뒤 ‘지’부분에서 3옥타브 도까지 음이 치솟는다. 2옥타브 후반대에서 3옥타브 도까지 빼곡하게 음이 찍혀있는 마의 구간이다. 김성면이기에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김성면이기에 아름답게 불러낼 수 있는 ‘김성면을 위한 최적의 곡’이라 할 만하다.
두 번째 앨범에 실린 ‘소유하지 않는 사랑’에서도 김성면표 애절한 록발라드는 꾸준히 이어졌다. 두 번째 앨범을 내기 전 기타리스트 이태섭은 팀은 탈퇴하지만 김성면은 본인의 이름 대신 K2란 밴드 이름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한다. 이 선택은 ‘K2=록발라드 보증수표’란 공식으로 이어지며 성공의 발판이 됐다.
1999년 나온 세 번째 앨범에 실린 ‘그녀의 연인에게’ ‘유리의 성’으로 김성면은 정점을 찍는다. ‘그녀의 연인에게’는 복면가왕에서 가수 허영생, 유회승이 불러 주목을 끌었다. 그만큼 잊히지 않는 명곡이란 얘기다.
알고 있나요 지금 그대 가진 행복 내겐 아픈 이별이란 걸
그녀가 나를 떠나가기 전에 나도 그대처럼 행복할 수 있었죠
설레임이 가득한 그대 하루만큼 나의 하룬 길고 외로워
어쩌면 나는 바랬는지 몰라 두 사람의 사랑 또한 이별이 되길
이런 나를 이해해요 그대 미워할 수 밖에 없는 날
그대가 난 눈물이 날만큼 부러웠었죠 꼭 하나만 바래요
날 대신해 그녈 영원히 지켜줘야 해
내가 못이룬 사랑 이제는 다 모두 이룰 그대
행복하길 그녀의 사랑이니까
이 세상에 누구보다 그대 좋은 사람이길 바래요
나보다 더 그녀를 아끼고 사랑할 사람
꼭 하나만 바래요 날 대신해 그녈 영원히 지켜줘야 해
내가 못이룬 사랑 이제는 다 모두 이룰 그대
행복하길 그녀의 사랑이니까
꼭 하나 기억해요 이 세상에 난 추억이 되어 잊혀지겠지만
오랜 간절함에도 내겐 허락되지 않던 사랑
모두 가진 바로 그대라는 걸
이 노래는 작곡가 김형석이 만든 노래지만 ‘김성면표 K2 문법’을 다분히 의식한 흐름을 보인다. 잔잔하게 시작해 절정에서 터지는 김성면의 보이스 컬러를 제대로 담았다. 고음부 2옥타브 라와 시플랫을 오가던 음표가 ‘3옥타브 도’를 찍고 내려오는 구조도 비슷하다. 김성면의 곡 중에 어렵지 않은 노래가 없지만 극악의 난이도곡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유리의 성’이다. 악보 곳곳에 3옥타브 도가 심심찮게 찍혀 있다. 동석한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수많은 남자들이 노래방 버튼을 눌렀지만 성대를 찢어버릴 듯 힘을 줘도 ‘삑사리’란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던 곡이다. 이 곡은 조규만이 작곡했는데, 이 역시 전형적인 K2표 발라드 범주 안에 들어있다.
하지만 이 앨범을 정점으로 김성면은 대중에게 잊힌 가수가 된다. 2004년 네 번째 앨범을 냈지만 흥행에 실패한다. 음반사에서 나오면 우여곡절 끝에 거액의 빚을 떠안은 그는 무려 13년 동안 신곡을 내지 못한다. 2008년 파산 신청에 이어 2009년 법원에서 면책 결정을 받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으로 들어오면서 가요계 주류가 급격히 아이돌 위주로 재편된 점이 김성면에게는 뼈아팠다. 록발라드가 득세하던 1990년대와 달리 2000년대는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 것이 현실이었다. ‘이건 귀를 막고 들어도 K2노래다’를 알 정도로 특색 있었던 ‘김성면표 발라드’는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좀 식상하게 들리기도 했다(하지만 좋은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살아남는 법이다. 김성면의 노래가 그렇다).
그는 ‘복면가왕’ ‘슈가맨’ 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면서 여전히 건재한 목소리를 자랑한 바 있다. 최근 가요계 트렌드는 많이 바뀌어서 노래 잘하는 가수가 설 수 있는 폭이 과거에 비해서는 좀 넓어진 느낌이다. 꼭 신곡을 들고 나오지 않더라도 ‘불후의 명곡’ 등을 비롯해 목소리 하나로만 인정받을 수 있는 주목도 높은 무대가 늘고 있다. 노래 잘하는 가수 김성면을 더 많은 무대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대 트렌드에 관통하는 ‘양념 같은 예능감’까지 탑재하고 나온다면 그를 찾는 손길은 바빠질 수 있을 것이다.